실용화 교육이 필요하다 1월 24일 토 2004년
큰일났다. 이것은 엄살이 아니다. 호들갑을 떠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대로
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대학 30년의 역사상 가장 좋지 않은 일이 터졌다.
예전에 우리대학의 지원생이 이렇게 크게 감소된 적은 없다. 작년에 감소되
었을 때만 하더라도 감소비율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
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감소이다. 그것도 거의 14% 감소라니. 지
난 30년 동안 지원생이 줄곧 증가하다가 이제는 기운이 다했는가? 감소세
로 돌아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런 사태가 올 줄은 몇년전부터 예견되었
었다. 그래서 최근 홍보를 크게 강화해 왔고 또 그 덕도 많이 보았다. 이제
는 홍보의 약발도 떨어진 모양이다.
지원생 감소의 원인은 대개 학교 외부상황의 변화에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
고교 졸업생의 감소와 입학희망자의 고갈이 첫째 원인으로 꼽힌다. 사실 지
원생 감소는 우리만이 겪는 것이 아니다. 사이버대학들의 난립과 그들의 과
다한 홍보가 우리에게 치명타를 입혔다는 분석도 있다. 또는 ´학사학위증´
의 위력이 이제는 별로 안 먹히고 있다는 관점도 있다.
이러한 원인분석과는 관계없이 모두가 염려스러워 하고 또 불안해하는 것
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안해하기만 하면 될 일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잠깐 걱정하는 표정을 짓다가 모든 원인을 외부에 돌리
고 그만둘 일은 결코 아니다. 우리대학 지원생의 감소는 단지 우리 구성원
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우리 학교로 인해 우리 사회 평
생고등교육의 기틀이 잡혔다.
모든 국민이 평생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대학으로 인해
우리 국민전체의 지적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대학의 위축은 우리나라 평생교육의 위축으로 바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 자
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위축된 우리대학의기를 다시 펴게
해야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과감한 발상을 해야 한다. 우리나
라 대학교육 전체의 질을 바꿔야 한다는 대담한 발상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단지 원격교육의 차원에서 성급하게 발상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학교육을 선도한다는 큰 포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을 폭넓게 비판해보자. 그것은 해방 이후 줄곧 ´근엄주
의´에 사로잡혀 왔다. 상당수 학과목과 그 내용이 재미없고 쓸모 없고 배우
기도 가르치기도 어려웠다. 그저 근엄한 학과목 명칭이었고 또 근엄하기만
한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학구열에서가 아니라 시험, 졸업, 학위,
간판을 위해 대학을 다녔을 뿐이다. 강의실에서 배운 것은 아는 체하는 데
나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장래 개인생활에 또 직장생활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학생들
은 그들의 장래에 필요한 지식을 교수로부터 얻지 못했다. 강의실과 교재에
서도 얻지 못했다. 대신에 선배들로부터 귀동냥해서 얻었다. 학원과 취직대
비공부에서 얻었다. 그리고 취직한 뒤 직장의 연수과정에서 얻었다.
이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이 되고 있다.
근엄만을 먹고사는 대학 덕택에 덕보는 것은 빌딩마다 들어서 있는 학원들
이다. 비실용적인 지식이 대학에서 판치고 있는 것이다. 대학졸업 간판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비싼 돈내고 대학 교육을 받으려 하겠는가?
우리대학이 앞장서서 학과목과 그것의 내용을 실용화해야한다. 공부가 시
험이나 졸업을 위해 하는 고통이어서는 안된다. 대신에 재미있어서 또 필요
하기 때문에 하는 즐거운 과정이 되어야 한다. 재미와 필요성은 학구열의
원천인 것이다.
이것이 실현되면 우리 사회 전체의 변혁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한창수 (중문학과 교수)방송대학 학보 3면에서 애독자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