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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그때 그 시절, 탄광의 역사를 본다

국민리포트 월~금요일 19시 40분

그때 그 시절, 탄광의 역사를 본다

등록일 : 2022.12.06

김나연 앵커>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6~80년대, 그때 그 시절 탄광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탄광이었던 경북 문경 '은성탄광'이 이제는 박물관이 돼 탄광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승철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홍승철 국민기자>
(경북 문경시)
1994년 폐광 전까지 30년간 석탄을 생산했던 문경 은성탄광.

홍승철 국민기자
"이곳은 광산으로 들어가던 다리인데요. 상부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광차가, 하부는 일반차량이 다니던 이중식교량이었습니다."

(문경에코렐라 석탄박물관 / 경북 문경시)

연탄 모양을 본뜬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석탄과 관련된 체험 공간이 눈에 들어옵니다.
19공탄으로 불렸던 서민 연료 연탄.
연탄을 만드는 과정부터 연탄을 때는데 필요한 난방 기구들이 옛 시절을 불러냅니다.

인터뷰> 이정혜 / 경북 상주시
"추운 겨울날 오들오들 떨면서 집에 들어갔는데 연탄 두 장 포개서 따뜻하게 데워진 그 방, 온돌방에 들어가면 손도 몸도 따뜻해지고..."

인터뷰> 민기홍 / 경북 상주시
"겨울에 교실에서는 밥을 데워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양철 도시락을 갈탄으로 만든 연탄난로 위에 차곡히 쌓아서 데워서 먹었습니다. 도시락이 맨 밑에 것은 눌어가지고 일부러 누룽지를 먹기 위해서 맨 밑에 도시락을 넣으려고 경쟁도 하고 그랬어요."

석탄재와 땀방울이 범벅이 된 채 지하 갱도에서 착암기로 탄맥을 뚫고 있는 모습은 어려웠던 시절 모든 것을 걸고 석탄을 캐던 광부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갱도의 깊이는 800m, 파들어간 전체길이는 무려 400km에 이른다는데요.
당시 이곳에서는 약 4,300명의 광부들이 일했다고 합니다.
석탄을 운반하고 광부들이 이동하던 지하 갱도,

현장음>
"난 지금 어디쯤 내려와 있을까, 그래도 같이 살자 우리 같이 살아나가자~"

붕괴 때 탈출구를 알려주는 쥐를 친구처럼 가까이했고, 유독가스를 금방 알아채 갱도의 첨병 역할을 했던 새, 카나리아 이야기는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현장음>
"친구~ 생명을 지켜주는 친구~"

최신 미디어 기술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 갱도는 이색 체험장입니다.

현장음>
"발파가 깨진 돌들을 치우고 갱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주를 세웁니다."

인터뷰> 손유승 / 대구시 동구
"기차 탈 때 껌껌해서 무서웠는데 안에 들어가니까 재미있는 게 많아서 좋았어요."

지하 8백 미터.
광부들이 탄을 캐고 휴식을 하던 공간.
가족을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그들의 힘겨운 삶이 뮤지컬 공연으로 펼쳐집니다.

인터뷰> 임우정 / 대구시 북구
"깊은 땅속에서 석탄을 캐며 가족을 부양했던 그분들을 생각하니 숙연해집니다. 오늘 저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의 노력 때문이 아닐까요..."

(탄광사택촌)

탄광에서 나와 언덕길을 내려가면 사택촌이 나타나는데요.
입구에 내걸린 당시 구호와 이발관과 목욕탕, 주점, 식육점 당시 가게들과 살림살이 모습이 그 시절 광부와 탄광촌의 삶을 보여줍니다.

인터뷰> 윤두현 / 문경에코랄라 대표이사
"석탄, 화석연료 에너지가 전 세계적으로 산업혁명이나 우리나라 근현대사 발전에 이바지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세대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 또 우리 아이들이 어떤 생활을 앞으로 해나가야 되느냐에 대해서 테마파크 에코랄라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재: 홍승철 국민기자)

박물관 앞터에는 광산 사고로 숨진 이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데요.
석탄산업과 지역경제의 이끌었지만 이제 몇몇 남아 명맥만 유지하는 탄광이 박물관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홍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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