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8월의 독립운동가로 대한제국 장교 출신 의병장 연기우 선생을 선정했습니다.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연기우 선생은 평생 항일 무장투쟁을 펼쳐왔습니다.
유한권 국민기자의 보도입니다.
연기우 선생이 강화진위대 군인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강화도 관문 더리미 벌판입니다.
조선 말기의 의병장인 연기우 선생은 진위대 부교인 지홍윤과 함께 갑곶(甲串)과 덕물포 전투에서 일본군을 막아냈습니다.
1908년 선생은 경기 황해지역 의진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임진강을 넘나들며 치열한 전투를 벌려 일본군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인터뷰> 류중현 부원장 / 강화문화원
"갑곶 군대에서 동기들과 함께 일본 왜병하고 더리미 벌판에서 들어오면서 크게 승리한 곳인데, 그 시발점이 전등사에서 비롯됐다는 데…"
선생의 항일투쟁은 임진강을 넘나들며 경기, 강원, 황해 3도의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1908년말 연합의병 대장 이인영과 함께 서울 진공작전에 참가해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 치열한 교전을 벌여 일본군경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선생은 그 후 창의 한북대장이 되어 고양·연천·파주·강화·교동 등 경기 북부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연기우 의병장의 항일투쟁 활약상은, 안타깝게도 1910년 중반 이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1911년 가평전투 중 전사하였다는 설과 1914년 인제에서 부친과 함께 체포되어 순국했다는 2가지 설이 있습니다.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선생은 지역 주민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았습니다.
선생은 군자금과 물자 하나 절대 허투로 사용하지 않고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의병활동을 해왔습니다.
인터뷰> 한혜지 / 전주대 경영학과 1학년
"좀 더 직간접적으로 느끼게 돼서 얼마나 노력을 하셨나 감명을 받게 됐고 저 자신이 이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큰 깨달음이 왔던 것 같아요."
얼굴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연기우 선생은 오로지 구국애민 정신으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정부는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위패를 봉안하고 1962년 선생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국민리포트 유한권입니다.
촬영: 이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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