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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인생이 탁구였던 어머니”- 여자국가대표팀 감독 현정화-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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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3157
등록일 : 2009.12.09 16:27


“인생이 탁구였던 어머니”

- 여자국가대표팀 감독 현정화

-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

12월 11일(금) 저녁 8시 40분 방송 -


KTV 한국정책방송원(원장 손형기)은 이 시대, 희미해져가는 ‘인정(人情)’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민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휴먼토크내 마음의 고백』을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40분부터 방영한다.     

                             


□ 이번 주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식,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을 모두 제패하고, 세기의 탁구여왕 덩야핑도 이루지 못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탁구 여왕, 현정화 감독을 만나본다. 현 감독은 지금 불혹의 나이에 KRA(한국 마사회) 감독과 여자대표팀 감독을 겸하고 있다. 그의 강인한 승부 근성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스스로 고백한다. 탁구선수 남편에, 탁구선수 딸에, 탁구선수 사위를 둔 현 감독 어머니의 인생도 탁구를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 후배 탁구선수를 양성하는 지도자로서, 또 보통사람의 아내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모습과 지금의 ‘현정화’ 감독을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인 어머니께 전하는 특별한 고백을 휴먼토크 『내 마음의 고백』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보도 자료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한국정책방송(KTV) 방송제작과 김우진 PD(☎ 02-3450-2280)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붙임 1.

   현명한 승부사, 탁구 여왕 ‘현정화’

                    한국 탁구 신화의 부활을 꿈꾸는 아름다운 리더

                           

□ 현정화 감독의 탁구인생은 널리 알려진 대로 화려하다. 18세 계성여고 시절부터 세계 정상을 밟기 시작해 한국 탁구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전종목 석권이라는 그랜드 슬램의 금자탑을 세웠다. 그는 이에리사에서 양영자, 그리고 현정화로 이어진 한국 여자탁구계의 자존심이었던 셈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탁구에 입문하여 1987년 양영자 선수와 팀을 이뤄 출전한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복식 부문 우승으로 시작해 한국 탁구 역사의 빛나는 순간을 장식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중국의 덩야핑에게 패배한 뒤 ‘현정화의 시대는 갔다’는 기사가 난무할 정도로 혹독한 슬럼프를 겪었으나 199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여 한국 탁구 역사상 37년 만에 여자단식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최초로 탁구세계선수권대회 그랜드슬램(단식·복식·혼합복식·단체전)을 달성했다.


□ 현정화 감독은 1994년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현재는 탁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선수보다 감독 생활이 더욱 힘들다고 말하는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탁구 단체전 3위의 성과를 올렸다. 1998년 결혼한 동갑내기 탁구선수 출신 김석만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둔 집에서는 아내이자 어머니로, 사회에서는 국가 대표 탁구팀을 이끄는 리더로 선수 은퇴 이후로도 바쁘게 지내고 있다.       


탁구 선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던 어머니

지금은 탁구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후원자


□ 그의 인생은 탁구와는 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아버지와 남편이 탁구 선수였고, 딸도 탁구에 재능을 보이는 터라 집안 대대로 ‘탁구’는 대를 잇는 가업이 되었다. 현정화 감독의 화려한 탁구 신화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한 승부근성 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 김말순씨는 아버지가 초등학교 때부터 폐질환을 앓았던 탓에 혼자서 가계를 꾸려나가셨다. 탁구 선수였던 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딸이 탁구 선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어머니는 탁구선수 남편에, 탁구선수 딸에, 탁구선수 사위까지 봐야 했다. 현정화 감독의 어머니는 1950년대에 지방 명문이었던 경남여고를 졸업했고, 오랫동안 바깥일을 했음에도 보수적이고 엄격하게 세 딸을 길렀다. 짧은 치마와 소매 없는 상의조차 허용치 않았다. 현정화 감독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선수 시절 고비 때마다 자신을 버티게 해준 힘이기도 했지만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역시 결정적인 조력자다. 경황없는 그녀에게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여전히 어머니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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