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을 알아보는 <문화와 정책>시간 입니다.
오늘은 김관 기자 함께 합니다.
Q1> 김관 기자, 지난 주 금요일 명동 한 복판에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고요?
A1> 네, 초창기 한국 공연예술의 보금자리나 다름 없었던 명동예술극장이 연극인과 관객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흡사 젊은이들과 일본관광객들의 전유물 같은 유행1번지 명동.
그곳에 다시 문화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킬 명동예술극장의 개관식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개관식은 지난주 금요일 오후 3시에 열렸습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비롯해 문화계 인사 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명동 중심가로 모였는데요.
모습을 드러낸 명동예술극장, 외부는 예전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되 내부는 현대식 공연장 모습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연극공연에 가장 적합하다는 액자형식의 프로시니엄 무대에 발코니 객석까지 갖췄는데요, 3개층에 552석 규모의 객석을 지닌 극장은 특히 무대와 1층 객석간 최대거리가 15m도 채 되지 않아 배우의 표정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백발이 됐지만 과거 이 무대에서 젊은 열정을 불태웠던 원로 연극인들,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Q2> 네, 지금 명동이야 예술의 메카로써의 모습이 좀 퇴색했지만 50대에서 7,80대까지 어르신들에겐 정말 낭만의 장소 아니었겠습니까?
A2> 네, 194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명동극장을 중심으로 해서 명동은 그야말로 문화살롱과도 같은 곳이었다고 하는데요, 연극인 뿐 아니라 내로라 하는 문인과 화가 음악인 등이 근처 술집과 카페에서 함께 교류하며 창작혼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Q3> 좀 더 빨리 문을 열었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도 드는데, 그간 극장이 다시 간판을 달기 까진 우여곡절이 참 많았죠?
A3> 네, 명동극장은 민간기업에 매각된 뒤 건물이 완전히 헐릴 위기도 있었습니다.
1934년 명치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명동예술극장은 40여 년 간 한국연극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는데요, 그러다 1975년 한 민간금융회사에 매각된 뒤 유행의 소용돌이 속에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심지어 지난 95년에는 극장건물이 헐리게 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는데요, 당시 명동지역상인들과 연극인 등이 필사적으로 이를 막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시 건물을 사들이면서 복원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예술계와 상인 그리고 정부의 질긴노력 끝에 귀환하게 된 명동예술극장.
연극인 출신 유인촌 문화체육관관부 장관은 선배 연극인들 앞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Q4> 네, 사실 우리 연극계. 영화나 뮤지컬 등에 밀려 참 어려운 현실에 버텨오지 않았습니까.
A4> 하지만 영화나 뮤지컬도 결국 연극에서부터 비롯된 장르입니다.
그만큼 기초예술로서의 연극은 상당히 중요한데요, 때문에 프랑스나 영국, 일본 등 문화선진국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국립극장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명동예술극장도 일본의 신국립극장, 영국의 바비칸 극장, 프랑스의 꼴린느 국립극장 등에서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들 극장처럼 명동극장도 연극 만을 위한 대관 없는 공연장으로 운영될 계획입니다.
즉, 대부분의 공연을 극장이 독자적으로 기획 제작해서 관객과 만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연극계에는 큰 기회입니다.
오는 21일까지는 개관기념작으로 우리 희극 <맹진사댁 경사>가 무대에 오르는데요, 앞으로도 햄릿, 베니스의 상인 등 작품성 있는 연극들을 명동극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네 명동예술극장과 함께 명동에 다시 필 낭만시대를 기대해봅니다.
김관 기자 오늘 소식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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