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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4월의 독립운동가…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

국민리포트 토요일 10시 50분

4월의 독립운동가…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

등록일 : 2015.04.14

광복 70년을 맞는 해 4월의 독립운동가로 영국인 사업가 '조지 루이스 쇼'선생이 선정됐습니다.

선생은 외국인임에도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을 지원했습니다.

유한권 국민기자가 소개합니다.

영국인 사업가 '죠지 루이스 쇼'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의 망명과 독립운동을 지원한 공로로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4월의 독립운동가입니다

인터뷰> 김성기 학예연구사/ 독립기념관

"그 당시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비밀문서들을 조지 루이스 쇼가 운영하는 화사를 통해 국내외로 전달 되도록 지원 함으로서.." 

선생은 1907년 중국 안동현 단동시에서 무역회사 이륭양행을 운영하면서 독립 운동의 핵심조직인 교통사무국의 설치를 지원했습니다. 

인터뷰> 김재형 상병/ 특전사 국제평화지원단

"독립 운동가들의 기운과 정기를 받기 위해서 전우들과 함께 왔습니다."

선생이 운영한 무역회사 소속의 선박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국내와 상해를 오가는 이동 수단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들이 거사를 도모하는 데 필요한 무기 보관과 은신처를 제공한 선생은, 일본영사관과 경찰서뿐 아니라 조선총독부로부터 사업에 큰 타격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감시의 대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신변의 위험과 감시도 선생의 의지를 꺽지는 못했습니다.

선생의 일본인 부인도 남편을 따라  독립 운동 지원에 적극적을 참여했습니다.

루이스 쇼는 1920년 7월 일제에 의해 내란죄로 체포돼 4개월간 옥고를 치룬 후에도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했습니다. 

1921년 1월 26일 선생은 이승만, 안창호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마련한 환영연에서 '금색공로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한철호 교수 /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한국 독립운동에 대해 대단한 애정과 관심 단지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세계사 적으로 억압을 받는 민족의 해방과 광복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1943년 63세로 푸저우에서 생을 마감한 조지 루이스 쇼 선생에게는 독립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1963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습니다.

조지 루이스 쇼 선생의 국적을 초월한 평화와 사랑 정신은 이번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으로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민리포트 유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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