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안전, 신앙이 아니라 과학
반론 -이필렬 교수의 ‘한국형 표준원전과 안전 ‘신앙’’에 대해
함철훈/ 가톨릭대 법학과 교수
한겨레 1/28
위험시설의 건설에는 각종 행정규제가 따르며, 그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규
제도 강화된다. 특히 원전의 경우 비가시적 방사선 위험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와는 달리 매우 특이한 규제방식이 채택되고 있다. 이를
‘다단계 규제’라 한다. 현행 원자력법은 원전의 경우 ‘건설허가’와 ‘운영허
가’ 이외에도 단계별로 다양한 안전규제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원전에 대하여 이와 같은 방식을 채택한 최초의 국가는 상용원전의 개발에
가장 먼저 착수한 미국이었다. 그 이유는 1950년대 초 당시 세계 최고의 기
술수준을 보유한 미국조차도 원전의 위험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었기 때
문에 기술발전의 추이를 검토하면서 더욱 진전되고 검증된 기술을 원자로
의 설계에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원전의 설계 및 운전경험이 축적되고 어느 정도 안전성에 대한 자신감이 생
기자 새로운 노형개발에 따른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경제성이 있는 안전
한 원자로에 대한 수요가 세계적으로 나타났다. 이에 원자력 선진국들은 표
준원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적 추세 속에서 원자력
기술자립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90년대 후반 한국표준형 원전의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원자력기술사에 전환점을 마련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원자
력 기술자립은 여러 측면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기술개발에
대한 자신감은 다양한 형태의 원자로 개발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원
동력이 되었다. 이제 한국표준형 원전은 유망한 수출산업으로 등장하고 있
어 그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최근 영광 및 울진 지역에서 발생된 몇몇 사건·사고에 대하여 주민 및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의 원전에 대한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방송통신대의 이필렬 교수는 1월17일 <한겨레> 시평에서 원자력전문가들
을 안전신앙의 맹신자로 단정하고, 나아가 방폐장 유치에 서명한 서울대 교
수들조차 기술만능신앙의 탁월한 전파자라는 야유성 표현을 숨기지 않았
다. 또한 원자력기술은 인간이 취급하기에 너무나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기
술임을 전제로 최근 발생된 일련의 사건들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경고와 함
께 원자력계의 회심을 권유하면서 원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이렇다.
우선, 최근의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의 문제이다. 원전지역 주민들이
조그만 사건에도 놀라고 불안해 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며, 이 교수
의 지적사항도 결코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원자력전문가들은 어떤
사건에 대하여 일반주민처럼 결과만을 놓고 감성적으로 대응할 수만은 없
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같이 온도차가 심한 겨울에 시
민은 필요한 때마다 온도계의 눈금만을 보는 정적 관찰만으로 충분하지만,
기상학자라면 적어도 기압, 습도, 풍향 등을 종합하여 열유동현상을 동적으
로 고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원전에서 사건이 발생될 때마다 원자력전문
가들은 일반주민과는 달리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결과에 이르기
까지의 모든 과정을 논리적으로 규명하여 위험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 이러
한 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국형 표준원전은 도입 당시부터 안전성에 관한 논란이 계속돼 왔기에 이
를 둘러싼 우려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국제적으로 공인된 외국전문
가들의 종합적 안전 진단을 받은 바 있다. 그 결과 한국형 표준원전의 안전
성 및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공인됐다. 우리의 원전 문제를 평면적 사고로
접근한다면 전문가와 일반인이 느끼는 안전의 체감지수에는 상당한 차이
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익을 고려하는 입체적 사고로 접근한다면, 전문
가의 기술적 판단과 공학적 결정이 존중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며, 우리 원전의 성공적 해외 진출을 위해서도 우리의 표준원전에 대한
더 이상의 시비를 그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