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눈을 높이는 시간, 독립영화를 만나볼 순서입니다.
함께 해주실 맹수진 영화평론가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맹수진입니다.
Q1> 올 하반기 한국영화의 뒷심이 눈에 띕니다.
영화 '해운대'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요.
‘국가대표’를 비롯한 다른 한국영화들도 전반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지요?
A1> 네. ‘해운대’가 1,000만을, ‘국가대표’가 600만을 넘겼다는 집계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런 흥행소식은 그동안 침체기였던 한국 영화 시장에, 분명히 환영할만한 소식입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그만큼 짙어진다고 하죠.
이런 대박영화들이 극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면서, 관객의 선택을 받을 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작은 영화들이 생기게 되는데요.
실제로 지금 상당히 ‘볼만한’ 영화들이 극장을 잡지 못해서 빨리 내리거나, 개봉을 미루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만큼은,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는 조금 어렵지만. 놓치기는 아까운 영화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Q2>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해주실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요?
A2> 오늘 보실 영화는 김태곤 감독의 ‘독’입니다.
이 영화는 국내 독립영화는 물론, 상업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본격 심리호러 영화인데요.
관객들을 비주얼로 압도하는 다수의 호러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에 선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요 근래 한국 공포영화는 ‘장화, 홍련’과 ‘여고괴담’의 성공 이후, 지나치게 도식화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었는데요.
드라마는 줄어들고 피가 낭자하는 잔인한 장면이나 소름끼치는 음향과 함께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에만 집중되었다는 거죠.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탄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관객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데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공포라서 더 무섭게 느껴지실 겁니다.
네, 그럼 김태곤 감독의 영화 ‘독’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화를 보니까 늦더위가 싹 달아나는 느낌입니다.
Q3> 이제 행복하게 잘 사는 일만 남은 것 같은 일가족에게, 어느 날 닥친 불행을 그리고 있는데요?
A3> 영화에는 이 가족의 행복을 상징하는 다양한 장치가 등장합니다. 시골생활을 정리하면서 구입한 서울의 아파트라는 공간이 그렇고, 예쁜 딸과 곧 태어날 아이 역시 이 중산층 가족의 행복함을 돋보이게 하죠.
그리고 형국이 서울로 상경하자마자 소유하게 되는 회사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할수록, 그들의 행복을 돋보이게 하던 장치들이 어느새 그 행복의 이면에서, 이들의 행복을 위협하는 잠재적 공포의 상징물로 변화하죠.
새 보금자리인 아파트에는 시커먼 녹물이 쏟아지고, 예쁜 딸은 사탄의 아이처럼 낯설고 기괴하게 변해갑니다.
그들의 행복한 가족생활을 가능하게 해줄 회사 역시 골치를 썩이죠.
행복의 증거물처럼 보이던 것들이 고통과 불행의 구덩이, 파멸의 흔적이나 결과물로 변하는데요.
그러한 변화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의 요체죠.
네, 그럼 영화를 만든 김태곤 감독의 인터뷰를 들어보겠습니다.
감독님께서 영화 속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하셨는데요.
Q4> 정말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파트가 배경이라 더 무서운 것 같아요.
A4> 최근 공포영화에서 아파트는 심심찮게 중요한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불신지옥’도 그렇고요, 아예 ‘아파트’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었죠.
왜 이렇게 아파트가 자주 등장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단순한 거주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대한민국 중산층에 대한 꿈과 욕망이 집약되어있는 상징적 공간이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라는 공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라는 거죠, 이 영화에서 형국은 그렇게 욕망하던 꿈의 공간에 입성하지만, 정작 본인은 폐소공포증
때문에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합니다.
아파트를 수직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는
이 단란한 가족의 행복 속에 깊이 새겨져있는 트라우마의 심연을 상징하는데요.
관객은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그 심연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Q5> 귀신보다도 사람이 더 무섭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영화에서도 귀신보다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건, 이웃의 부부죠?
A5> 네. 치매 들린 노모를 모시고 사는 이웃의 중년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이 가족을 교회로 이끌죠.
하지만 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부부 또한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요.
사실 이 영화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미국의 유명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마리의 아기’(악마의 씨)를 연상시킵니다.
이 영화 역시 미국 대도시 뉴욕의 아파트가 배경이고, 젊은 부부가 아이를 가지고 이사를 오면서 시작되는데요.
‘로즈마리의 아기’는 이 부부에게 이웃의 사이비 종교인들이 접근하면서, 뱃속의 아기가 사탄의 씨앗으로 태어난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이나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더 이상 악과 공포의 근원이 나의 바깥, 외부에 있지 않고, 나의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고 자라난다는 메시지 자체는 두 영화 사이에 연속성이 있죠.
Q6> 그런데 저는 이 영화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먹으면 죽는 ‘독’인줄 알았어요.
A6> 아마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은 감독님께 직접 들어봤습니다.
화면 함께 보시죠.
이 영화의 장르가 ‘심리호러’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Q7> 시각적인 특수효과 대신, 관객들을 몰입시켜서 공포를 전달하려면.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A7> 심리호러 ‘독’은 가족의 내면에 형성된 불안이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불안 속에서, 점차 광적으로 변해가는 인물들을 통해 불길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창조하죠.
이런 공포가 표현되려면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중요할 텐데요.
영화 속에서 부부로 등장한 임형국씨와 양은용씨는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독립영화 배우들입니다.
캐스팅 과정부터 에피소드가 많았다고해요.
감독님께 직접 들어봤습니다, 화면으로 함께 보시죠.
오늘 영화 ‘독’을 함께 보았는데요.
극장을 찾아볼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께
Q8>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A8> 오늘 하이라이트 장면을 소개해드리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전체를
보시고, 또 한 번 다시 보셨을 때 더 좋은 영화입니다.
굉장히 촘촘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 영화거든요.
그래서 다시 보시면 처음 볼 때는 미처 보지 못한 장면들이, 저마다 의미를 가득 담고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공포영화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결국 영화에서 남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와 풍경입니다.
개신교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 그리고 그 부모를 버거워하는 자식세대의 보이지 않는 갈등 같은 것인데요.
겉으로 보이는 행복이란 언제나 긴장과 죄의식, 억눌린 욕망의 분출과 억압 사이에서 위태롭게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삶의 조건들, 행복의 조건을 성찰하게 합니다.
Q9> ‘독’ 같은 개봉작 말고도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영화가 또 있다고요?
A9> 지난 달 한여름의 열기에 음악의 열기를 더했던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큰 호평을 받았는데요.
아쉽게 제천까지 가지 못하셨던 분들을 위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수작들을 만나보실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부터죠, 9월 한 달 간 매주 수요일마다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최고의 다큐들만을 모아 상영한다고 하니까요.
올해 놓치신 분이나 내년까지 기다리기 어려우신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네, 영화 한 편에 천만 관객이 드는 것도 좋지만, 영화 열편에 백만 관객이 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 극장에 개봉한 우수한 독립영화들에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맹수진 선생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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