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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

언제나 그리운, 고향역(1972)

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시절연가 금요일 20시 10분

언제나 그리운, 고향역(1972)

등록일 : 2024.11.01 20:50

모두가 서울로 몰려들던 시기가 있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60~1975년, 약 700만 명의 농촌 사람들이 도시나 공장지대로 향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탓에 서울로 상경한 사람 중 상당수가 직장조차 구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지게꾼, 넝마주이, 고물상, 노점상, 공사장 날품팔이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고달픈 삶이었다. 이때, 지친 마음을 달래주던 노래. 나훈아가 부르는 <고향역> 이었다.

# 오프닝 및 주제곡 소개
- 고정패널 김장실, 하재근, 특별출연 김태욱 소개
- 가수 김태욱은 작곡가 김정호의 아들. 김정호는 1980년대 그룹 <영과영>으로 데뷔했던 가수이기도.

# 김태욱이 부르는 <고향역>

# 1972년 가요계 : 나훈아 vs 남진
- 1972년은 나훈아와 남진의 라이벌 구도가 가장 절정에 달했을 무렵
- 1972년 나훈아 피습사건: 군 특수부대 출신 남자가 “남진의 사주를 받았다”면서 깨진 술병 파편으로 나훈아의 얼굴에 자상을 입힘. 징역을 살고난 후에는 남진을 찾아가 “당신이 시켜서 한 짓이라고 말하겠다” 위협. 다시 구속됨. 이후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밝혀졌지만, 팬들의 갈등이 심화.

# 1972년에 발표된 노래 <고향역> vs <님과함께>
- 두 사람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전혀 다른 노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음. 이상향의 공간을 그렸다는 것.
-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80퍼센트가 농촌에 거주했던 농촌중심사회. 하지만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집약적 수출 산업화.
- 농촌에 있는 사람들은 서울을 유토피아로 보고, 교육받을 기회를 찾거나 공장에 취직을 하는 등의 이유로 상경 시작.
- 1960~1975년 사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한 사람의 수는 약 700만 명.

# 개발이 급격하게 진행되던 시기, 하지만...
- 자본이 있거나 교육을 받아왔던 이들은 도시에 금방 적응.
- 하지만 기댈 곳 없이 맨몸으로 도시에 올라온 시골 출신들은 뿌리내리기 어려웠음.
- 지게꾼, 고물상, 노점상, 공사장 등에서 허드렛 일을 하며 도시 빈민이 되기도.

# 젊은이와 명절
- 추석이 오면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도시에서 고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음.
- 하지만 고향에 가기에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래는데 그침.
- 고향 관련한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 남상규의 <고향의 강>, 나훈아 <너와 나의 고향>, 김상진 <고향이 좋아> 등.

# 김태욱이 부르는 <머나먼 고향(1971)>

# 무명 작곡가와 유명 가수의 만남
- <고향역>을 만든 사람은 작곡가 임종수. <차창에 어린 모습> 이라는 곡을 완성한 뒤, 최고 인기가수였던 나훈아에게 어렵게 곡을 전달.
- 음반을 냈지만, 정부의 국민의식개혁운동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 가수 나훈아가 ‘가사를 바꾸고 곡 분위기를 경쾌하게 하자’고 권유.
- 작곡가 임종수는 자신의 통학 경험담을 바탕으로 <고향역>의 가사를 씀. 이번해도 묻힐뻔 했지만, 전국 방송국 PD들이 ‘나훈아의 숨겨진 명곡’으로 <고향역>을 꼽음. 이후 국민 애창곡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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