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가난은 누구책임?누구상대 독립운동? 광복군약력보고대회같은 8.15경
축식에서 대통령께서'독립운동가는 3대가 간하고 친일한자는 3대를 잘산다
는 기득권'말씀까지 듣게되였다
독립운동은 누구상대로 했나?그들에게 보상을 우선 요그할것이요 그들에
게 책임이 있을것 아닌지? 왜 일인들 있을때 아무소리 없다가 그들이 떠난
뒤에 돌아와서 누구에게 행패부리나? 결국 그 했다는 독립운동 뒷북치기가
더 요란한것같은데 결론적으로 3대호의호식했다는 사람들을 상대로한 독립
운동이 였나? 이런 고얀 경우를 보았나?
일정시대에서 8.15.미군정,건국에서 ,6.25,를 체험한 입장에서 보면
일류사회 어는곳에서나 부의 평등은 사실상 공산사회에서도 없고(공산당원
공직자 가 제일 잘 산다) 더더욱 독립운동다운 독립운동은 한반도내에선 거
의 없던때를 지나 8.15때는 서울근교 마을사람이 전전긍긍 저 일본군들이
해를 줄가바 꿈쩍못하고 있으니 무슨 말들하는지 염탐해 달라는것이 였다
그 일본군들이 살어지고도 얼마 있다가 집회같은것이 있었던것같다 이때
는 그사람들이 반일의 열사가 되여 있었다
그어려운 좌우대립혼란기를 지
나 5.10총선거로 대한민국건국이 시작되고 그해8.15엔 독립선포식이 구 총
독부건물에서 거행되였다 반공-반소 국민생활을 시작한다더니 내면적으론
호의호식하던 자본가(당시의 본원적 생산수단)의 땅나눠먹기부터 시작 올
바른 행정은 20년뒤 유신시대로 미루어진다
그렇다면 먹거리 식량은 무상배급제로 제도상의 균형을 잡어야만 공평한
것이 였
지만 과연 그랬을가?
6.25전쟁중엔 특히 도시민은 식량난에서 벗어날수없고 극
빈자로 퇴락해도 배급타먹지도 못한 버려진 도시 소시민 공산정권에서 호
칭하는 반동이였다고나할
가?
그후로도 특조법이랍시고 법관은 원시취득(땅의 조상 만들오주는데 5천
년역사 사회가 무색하고 역사왜곡과 같은 이치) 이랍시고 엉뚱하게도 해당
땅에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 근처에 사는 양주의 덤푸트럭사업자 라도 갈
어먹고 있다면 땅조상 만들어주느데 여념이 없어보인 시류가 계속되였다
즉 법관이 아니라 현재를 중시하는 탁상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고급경찰관
이요 경찰은 시민의 안녕을 위한 행동보다 법부터 따지고 제할일이나 관활
이 아니거나 구만한일로 우리가왜 나가보나 식의 법리따지는 법관을 닮어
가고 있었다
건국의 일등공신 유공자는 당시의 투표자였음이 명백하다 시방도 의문이
있다면 이처럼 일본의 항복은 미국이 받어내고 일본인들은 주거가옥과 생
업장,공장등 모두 두고 간것이다 은행돈은 인출해갔다지만!
그런대 독립투사란 분들이 꾀나 있어 감격시대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그 숭
고한 독립운동은 강제로 한것같지는 않은데 독립운동때문에 3대 가난은 일
단 독립운동빌미로 놀고먹기가 더한 탓은 아닐가? 우선 사람은 먹어야 산다
는 인간
의 본성데로 먹고사는 일은 동냥질이라도 어렵더라도 할수있는데까지는 해
야될 기본적
인성의무는 아닐가?
호의 호식했다는 동포에게 증오의 화살돌릴수
가 있을가?이쭘되면 가히 소아병적 억지 생때로 울거먹자는 심보 아닐가?
일본
의 항복 받었으면 해결되였을것인데! 쯔.쯧 떼.... ....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