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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가 밝혀낸 '50년 맺힌 한'
주민 "군복차림 경찰들이 총쐈다"
[현장취재] 마산 여양리서 6·25 피학살자 유골 대거 발굴
김호경 기자 kimuk@icross.co.kr
▲ 마치 장작더미 쌓인 듯, 차곡차곡 쌓여 있는 유골들.
ⓒ2002 김호경
6·25 전쟁 발발 직후 경남 마산 삼진 일대에서 경찰들이 민간인을 집단 학살
한 뒤, 매장한 증거가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다 제15호 태풍 '루사'의 영향
으로 세상에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전쟁 발발 52년만에 유골이 발견된 곳은 마산 진전면 여양리 옥봉마을 소
재 일명 '산태골'로 불리우는 산기슭의 20평 남짓한 고추밭.
고추밭 주인인 박모(56세)씨는 지난 4일 아침 8시 30분경, 수확을 위해 부인
과 함께 찾았다가, 섬뜩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빨갛게 영근 고추 밑으로 허
연 바가지와 함께, 나무토막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새하얀 조각들이 여기
저기 나뒹굴고 있었던 것.
이를 본 박씨는 순간 어릴 적 어른들에게 들었던 "6·25 발발 직후, 산태골하
고 도둑골에 보도연맹 연루자 200명을 총살해 집단으로 매장했다"는 이야기
가 뇌리를 스쳤다. 박씨는 즉시 이 사실을 진전면사무소에 신고했고, 이를
계기로 어른들의 진한 막걸리 냄새와 함께 나돌던 '학살 집단 매장'이 사실
로 드러나게 되었다.
52년만에 햇빛 본 200여 피학살자 유골
▲ 진전면장과 마을 이장이 약식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2002 김호경
6일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 유족회' 조윤
기 집행위원장과 함께 찾은 현장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토석과 함께 나뒹굴고 있는 유골은 '맺힌 한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언
젠가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전하고 싶어서일까' 52년 전의 것이라고 하기
엔 너무도 깨끗한 상태였다. 매장 장소로 추정되는 산사태 발생 지점은 마
치 나무장작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 유골이 매장되어 있었다.
갓난아기 마저...'경악', '분노'
▲ 담배값만한 유골도 발견되어 갓난아기 마저 매장한 의혹을 갖게 한다.
ⓒ2002 김호경
특히 이날 발견된 유골중에는 갓난아기 것이 분명한 유골도 있어 현장을 찾
은 취재진과 유가족 협회 관계자를 경악케 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아기가
죽으면 묻는 아기묘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으나, 유골이 삐죽
이 나와 있는 매장 지점 외에는 산사태가 발생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학
살 당시 함께 매장된 것이 유력시되고 있다.
조대현 집행위원장은 "거창 양민학살 유골 발굴 당시에도 초등학교 배지와
이름표가 발견된 적이 있다"며 "이곳에서도 등에 업힌 갓난아기와 함께 매
장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산사태로 발견된 유골 7구는 이 마을 이장과 주민들에 의해 52년간 차
가운 땅속에 있다 초가을 푸른하늘을 볼수 있었다.
전국을 고통의 도가니로 몬 태풍 '루사'가 그나마 우리에게 남겨준 호의였
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태풍 영향이 아니었다면 이 유골들은 영원히 소문
과 구담으로만 남았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피학살자 대부분 진주서 끌려온 보도연맹 연루자
▲ 52년 동안 땅속에 묻혔던 유골을 수습하는 촌로.
ⓒ2002 김호경
이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6·25 발발 직후, 200여명 가량의 민간인을 태운 트
럭 수십대가 여양리로 들어와 산태골과 도둑골 폐광에서 총살한 후 매장했
다고 주장했다.
유가족회 조 집행위원장도 "당시 진주 교도소와 마산 교도소에서 끌려온 사
람 2천여명이 마산 진전면 여양리 여항산 일대에 매장 당한 사실이 당시 주
민들의 증언에 의해 알려져 왔다"며 "다행히 이번 태풍으로 그 증거가 백일
하에 드러났다"고 말했다.
조 집해위원장에 의하면 이곳 여양리 산태골과 도둑골 폐광에 200여명, 비
실 폐광에 수 백여 명이 집단 매장되어 있다는 것.
학살현장서 살아나온 젊은이 다음날 총살당해
취재팀은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측과 함께 산태골과 도둑골 폐광에서 매장
부역을 했다는 박 모옹과 단독인터뷰 도중 충격적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
었다. 당시 경찰이 집단학살 장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 사람을 체포
해 그 다음날 스스로 구덩이를 파게 한 뒤 총살해 매장했다는 것이다.
▲ 학살 당시 현장을 목격한 박진규(80세)옹이 피학살자 유족회 조재현 집
행위원장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02 김호경
부인과 함께 유골이 발견된 지점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옥담 마을 회관 도
로 위에서 이번 태풍으로 쓰러진 논에서 가까스로 쓸어모은 이삭 정리를 하
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