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요람인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올해로 40년이 됐습니다.
대덕연구단지로 시작해 지난 2005년에는 지금의 대덕연구개발특구로 명칭이 바뀌었는데요,
그 변천 과정을 김형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사내용]
1973년 과학기술을 통해 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정책에 따라 시작된 대덕연구개발특구...
정부는 당시 교육과 연구지구로 결정했고, 이후 포도아 복숭아밭이었던 곳에는 하나 둘 전략기술산업 연구기관이 들어섰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현장을 직접 찾아 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대한뉴스(1979년)
“최신의 연구시설과 기술자의 해외초빙, 기타 전문 연구진과 여러 명의 요원들로 국내 과학공업기술의 자체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와 민간기업, 대학의 핵심연구시설이 한 자리에 모이며 연구의 효율성도 높아졌습니다.
지금의 카이스트, 한국과학기술대학 등 창의적 과학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시설과 문화환경도 조성됐습니다.
대한뉴스(1989)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선진국의 기술 보호장벽과 경쟁에 대처하기 위해선 이와 같은 연구기관의 학문적 밑받침이 필수적입니다.”
20여년 동안 투자된 금액만 총 8018여억원.
전자 통신 시대의 시작에 맞춰 고화질 텔레비전과 컴퓨터 기술 등 10대 첨단전략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국내 산업기술의 심장부로 거듭났습니다.
지문자동인식시스템과 차량번호판 자동인식 시스템 등 순수 국내 기술을 이용한 자체 개발에도 성공했습니다.
대한뉴스(1990년)
“이번에 성공한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개발로 컴퓨터 종합설계의 국산화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첫 삽을 뜬지 20년만에 1992년에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완성됐습니다.
연구시설과 교육, 주거환경이 갖춰진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국내 박사 인력의 10% 이상이 모여있는 대덕연구 개발특구는 유전공학기술과 정보산업기술 등 21세기 한국 과학기술 시대의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KTV 김형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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