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사료집이 5번째로 공개됐습니다.
'버마암살 폭파사건' 이후 남북 체육회담을 비롯해 분단 후 첫 이산가족 상봉 등이 담겼는데요, 1980년대, 남북 접촉의 생생한 장면을 김민아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김민아 기자>
1981년 12월부터 1987년 5월까지 남북회담을 기록한 자료가 공개됐습니다.
지난 2022년 첫 공개 이래 다섯 번째로, 분량은 1천693쪽입니다.
버마암살 폭파사건과 북한의 3자회담 제의, 남북한 체육회담,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등이 핵심 내용입니다.
1983년 10월 9일, 북한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아웅산 국립묘소 방문에 맞춰 폭발사고를 일으켰습니다.
녹취> 대한뉴스(1983.10.14.)
"천인공노할 붉은 테러로 버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일시에 유명을 달리하신 열일곱 분의 순국 외교사절들. 무슨 말로 이 비통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리오, 무슨 말로 이 분노를 가눌 수 있겠습니까."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고립된 북한은 1984년 LA 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명분으로 우리 측에 체육회담을 제의합니다.
1차 남북한 체육회담에서 우리 측이 버마 사건과 최은희, 신상옥 납치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납득할 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지만, 북측은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심지어는 "자작극임을 밝히라"면서 체육회담에 정치 문제를 가져오지 말라고 억지주장을 부리다 일방적으로 퇴장합니다.
2차 회담에서는 유례없이 험악한 분위기가 초래됩니다.
우리 측의 버마 사건 관련 요구가 회담 전제조건 인지를 두고 다투다가 남북 간 체제와 내부 문제에 대한 언쟁으로 번진 겁니다.
우리 측 대표에게 야유와 욕설을 퍼붓고 북의 동포가 안타깝다고 말하자 회의를 그만하자며 고함을 칩니다.
결국 남북단일팀 구성은 수포로 돌아갔는데, 북한이 LA 올림픽 불참태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공개된 사료 11권에는 분단 후 첫 이산가족 상봉도 담겼습니다.
남북이 10여 차례 실무접촉을 통해 절차를 집중적으로 협의한 끝에 1985년 9월 20일, 첫 상봉이 이뤄집니다.
녹취>
"건강하신 아버님 모습 보니 반갑습니다."
남한과 북한 적십자 총재는 판문점 중감위 휴게실에서 "평화통일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면서 "둘로 나눠진 남북 동포들이 하루빨리 합쳐지고 마음대로 다니게" 해야 한다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회담사료 2기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 센터장은 이번 사료집에서 "북한이 협상을 중단하고, 재개 하는 일종의 '살라미 전술'이 1980년대 초부터 나타난다"면서 남북한 자유왕래를 제안했던 80년대 대남정책과 지금의 대남정책은 정반대지만, "남한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든다"는 근본적인 목적은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인애 / 통일부 부대변인
"이번 공개에는 '남북회담문서공개 요약집'을 처음으로 발간하여, 공개되는 회담 사료의 주요 내용을 국민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통일부는 앞으로도 국민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문서 공개를 이어갈 방침입니다.
(영상취재: 김태형 / 영상편집: 김세원 / 영상그래픽: 손윤지)
김민아 기자 minachu@korea.kr
공개된 남북회담문서 원문은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국회도서관 내 남북회담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KTV 김민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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