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산에 살어리랏다! 선조들의 그리움이 서린 강화 : 강화산성 그리고 남장대
- 한국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
- 1232년 고려 시대 몽골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수도를 천험의 요새인 강화도로 옮겨 7.1㎞ 강화산성을 쌓고 39년의 항몽전쟁에 들어갔다.
- 유럽대륙 까지 진출하고 중국대륙도 점령한 몽골군이 38년간 점령하지 못한 전세계 유일한 지역이 강화도다.
- 무신정권이 들어선 고려는 백성을 돌보지 않고 권력싸움만 팽배해, 계속된 흉년과 벼슬아치들의 약탈과 착취로, 백성들은 고통속에 강화도를 떠나야 했다. 그 와중에 <청산별곡>이 구전된다.
- 이름 모를 선조들의 피와 눈물로 쌓은 성곽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힐링 스팟이 됐다.
- 지휘소와 감시의 역할을 했던 군사의 요충지 남장대에 오르면 멀리 개성 송악산과 예성강, 임진강, 한강 그리고 강물들과 함께 강화도섬을 둘러 흐르는 바닷물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 그리움을 품고 사는 실향민들과, 그리움을 남기고 가는 여행자들의 섬 : 대룡시장 & 교동다방
- 50여년간 교동도 경제발전의 중심지였던 대룡시장.
-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란 온 실향민들이 고향의 '연백장'을 본떠 만든 골목시장.
- 실향민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시장규모도 줄었다가 2014년 7월 교동대교 개통과 함께, 60년대 모습 그대로인 대룡시장을 타임머신여행하려는 관광객들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 골목마다 60~70년대 아이들의 놀이모습이 벽화로 정겨이 그려져 있고, 콩알탄,뽑기든 옛날 문방구 구경에 추억이 새록할 즈음, 옛 군것질 거리까지 추억향기로 물씬 젖어들게 만든다.
- 그 추억을 그리워하며 매일같이 빚어내는 실향민들의 대표적 음식인, 사연 많은 강아지떡과 이북만두가 있다. 이북만두는 아직도 이 마을에 남아계신 실향민 할머니들이 손수 빚는다.
-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 맛은, 다방에서의 계란노른자 동동띄운 쌍화차 한잔이다.
- 왔다 갔다, 다방안 빼곡한 쪽지들로 발도장 남긴 손님들은, 과거 자신들의 그 순간을 추억하기 위해 다시 찾아온다고.
■ 서울보다 부흥했던 강화도. 그 시절을 그리다 : 조양방직
- 조양방직은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에 강화지역 갑부 홍제묵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세운 방직공장이다.
- 서울보다 부흥했던 강화. 해방이후까지만 해도 강화는 우리나라 직물산업을 이끌어, 강화읍에만 직물공장이 60여개, 직원은 4000명이 넘었고, 60~70년대 우리나라의 수출을 견인했다.
- 90년대 들어 방직공장이 경북 구미나 대구로 옮겨가면서 공장은 가동을 멈췄고, 그렇게 약 30년간 폐허로 전락한 조양방직이 빈티지숍을 운영하던 이용철 대표의 눈에 띄어 지금의 멋진 카페로 재탄생 됐다.
- 공간 구석구석에는 재미있는 레트로풍의 전시품이 많다. 80~90년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빨간 공중전화박스, 놀이공원에서 탈출한 듯한 목마 모형, 한때 꽤나 사용했을 법한 재봉틀도 있다.
- 조양방직의 부를 상징하는 금고는 2층 건물 높이로 만든 회색 콘크리트박스다. 일꾼이 돈을 지게로 져서 은행까지 날랐다고 할 정도. 그 지붕엔 부의 상징인 누런 황소동상이 있다.
■ 강화가 품은 그리움이 노을로 물 들다 : 적석사 낙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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