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이 관련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종과 관련된 역사 현장을 찾는 발길이 늘었고, 엄흥도의 충정을 기록한 고문서도 처음 세상에 나왔는데요.
자세한 내용 오옥순 국민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오옥순 국민기자>
(장소: 사릉 / 경기도 남양주시)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가 묻힌 사릉입니다.
영월 장릉과 168km 떨어져 잠든 정순왕후가 단종을 사모한다는 의미의 능호가 말해주듯 사후에도 남편과 함께하지 못한 비운의 삶이 느껴집니다.
인터뷰> 강춘득 / 문화관광해설사
"숙종 24년, 1698년에 복위가 되셨습니다. 남편은 단종으로 이분은 정순왕후로 묘호를 받으셨고요. 능호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생각했다고 해서 '사릉'이라고 정해졌어요."
정순왕후 송씨의 삶의 흔적을 찾는 발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소: 정업원 / 서울시 종로구)
왕비의 신분을 빼앗기고 노비의 신분으로 82세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순왕후가 기거했던 정업원과 영조가 친필로 적은 현판과 비석이 당시 역사를 소환합니다.
인터뷰> 안순화 / 문화관광해설사
"친히 찾아오셔서 '정업원 구기'라는 비각을 세우고 비석을 세웠고, 뒤에 보면 '전봉후암어천만년' 현판에 보여지는 글씨 있죠. 신묘년 9월 6일 날, 눈물을 흘리면서 썼다는 기록을 같이 남겼습니다."
폐위된 정순왕후 송씨가 자주색 물감을 옷감에 염색해 생계를 유지했다는 자주동샘.
영월 방향을 바라보며 임을 그리워하며 울었다는 동망봉, 단종이 유배길에 오를 때 마지막 배웅을 했다는 이별의 현장 영도교.
기구했던 삶과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오옥순 국민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을 하면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단종을 향한 엄흥도의 충절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폐위된 어린 왕과 그를 끝까지 곁에서 지킨 엄흥도의 애틋한 이야기는 스크린 넘어 문헌으로도 이어집니다.
엄흥도의 6대손 엄철업 등의 군역과 잡역을 면제하고 이를 증빙하기 위해 병조에서 발급한 완문입니다.
영조 9년 1733년에 작성된 이 문서는 국가가 엄흥도의 공을 기억하고 그 후손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일반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인터뷰> 엄재원 / 서울시 강남구
"왕권에 굴하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하신 조상님이 계시다는 것에 상당한 긍지를 느낍니다."
인터뷰> 조영석 / 서울시 종로구
"여기 와서 상세히 적힌 흔적을 더듬어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고, 후대에 항상 아름다움을 남겨야 되겠다는..."
단종의 유배 과정이 담긴 조선왕조실록의 일부인 「단종실록」과 「세조실록」.
엄흥도의 충의로운 삶을 조명하고 그의 행적과 관련된 기록을 모아 편찬한 전기인 '충의공실기'와 '증참판엄공실기'.
단종의 슬픈 생애가 담긴 문학 작품, 이광수의 「단종애사」 필사본까지 단종과 엄흥도를 문헌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정진웅 /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 학예연구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람객이 1천5백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옛 문헌 속 단종과 엄흥도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영화와 옛 문헌을 비교하면 국민이 더욱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촬영: 이홍우 국민기자)
한 편의 영화가 다시 깨운 비운의 왕 이야기가 스크린을 넘어 그 흔적이 남아 있는 현장과 기록유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오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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