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용산.
산수지리가 훌륭하고 한강을 껴 수륙교통의 요충지였던 용산은 외국 군대가 가장 욕심내는 곳이었습니다.
용산에 외국 군대가 처음 주둔했던 것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몽고군이 고려를 침략해 용산을 병참기지로 활용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왜군이 용산에 주둔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이곳에 군수물자가 집결시키고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했습니다.
북으로는 북한산, 남산 등의 산이 둘러 쌓여있고 남으로는 한강이 마주하고 있어 방어가 용이하고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근대사회로 접어들어서도 외국군의 용산 주둔은 계속 됐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용산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1904년 러일 전쟁 이후에는 일본이 임진왜란에 이어 다시 용산의 주인이 됐습니다.
일본은 용산 일대의 300만평을 수용해 조선군 사령부를 두고 용산을 우리나라와 만주침략의 거점으로 활용했습니다.
1945년 광복을 맞았지만 용산은 우리국민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945년 9월 미군 제 24 사단이 용산기지에 차지했고 1978년 이곳에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규모가 커져 용산은 미군주둔의 상징적인 곳으로 자리매김 합니다.
동서로 흐르는 한강을 앞에두고 북한산, 남산, 관악산을 남북으로 잇는 교차지역 용산.
서울의 중심이자 교통의 요지인 용산의 역사는 외국군이 주둔하며 주인행세를 했던 아픔의 역사였습니다.
오랜기간 외국군이 주둔함에 따라 우리국민이 다가서지 못했던 아픈 역사의 땅 용산.
이제는 그 아픔을 승화시켜 대한민국의 푸른 희망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