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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 영면 [유용화의 오늘의 눈]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백기완 선생 영면 [유용화의 오늘의 눈]

등록일 : 2021.02.17

유용화 앵커>
불쌈꾼 백기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향년 8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93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기완 소장은 이산가족입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항상 그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큰형, 누나를 그리워했다고 하는데요.

갈라진 일념으로 그는 통일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과의 인연, 그리고 장준하 선생과 문익환 목사와의 만남도 그를 자연스럽게 통일운동의 길로 안내했습니다.

박정희 시대 당했던 고문 후유증으로 끝까지 고생했던 백기완 선생의 삶은 민중과 민주주의에 바쳐진 일생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백발의 거리투사 백기완 선생은 우리 사회의 고통을 받고 있는 민중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1950년대부터 농민, 빈민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1952년부터 문맹 퇴치를 위한 야학을 운영했고, 도시빈민운동, 나무심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박정희 정권과 온몸으로 맞서 싸운 열혈 투사 였는데요,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나섰다가 투옥당하기도 했습니다.

1974년에는 유신반대 백만인 서명운동,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 1986년 '부천 권인숙 양 성고문 폭로 대회' 주관을 했었습니다.

백기완 선생은 1980년 광주의 넋을 위로하고 한을 달래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을 직접 썼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해 작사를 했다는 백기완 선생은 노래 안에 기쁨과 슬픔과 희망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82년에 테이프에 비밀리 녹음된 이 곡은 기독청년 협의회를 통해 2,000개의 테이프로 복사되어 은밀히 전국에 배포되었습니다.

광주의 아픔과 분노를 노래를 통해 전하기 위함이었죠, 그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중가요로서 독재에 항거하는 저항 가요로서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민주화 투쟁 과정 중 수차례 옥고를 치르며 모진 고문을 당해 병든 몸이었지만 선생은 노동자, 농민, 철거민 등 약자를 위한 집회 현장 맨 앞줄을 지켰습니다.

새하얀 머리에 두루마기 자락 휘날리며 집회 현장을 지켰던 백기완 선생.

2017년 23차례 열렸던 촛불 집회도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백기완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귀는 '노나 메기'인데요, 노나 메기는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의 뜻과 같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반드시 도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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