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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외교문서 비밀해제···'북 NPT 탈퇴' 막전막후

KTV 대한뉴스 월~금요일 19시 00분

1993년 외교문서 비밀해제···'북 NPT 탈퇴' 막전막후

등록일 : 2024.03.29 20:05

모지안 앵커>
1993년 북한이 NPT, 즉 핵확산 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는데요.
당시 외교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37만여 쪽이 공개됐습니다.
북한으로 인해 촉발된 '1차 북핵 위기' 전후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김민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김민아 기자>
대한뉴스(1968.7.12.)
"7월 1일, 워싱턴, 런던, 모스크바에서는 각각 핵확산금지조약에 조인했습니다. 이 조약에는 우리나라도 서명했으며, 세계 100여 개 국가들이 조인했는데..."

비핵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 핵보유국이 미보유국에 핵무기를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약, NPT.
1993년 3월 12일,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북한에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특별 사찰을 요구했는데 북한이 미신고 시설 사찰을 거부하고,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을 빌미로 조약 탈퇴를 발표한 겁니다.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199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 막전막후를 다룬 외교문서가 오늘(29일)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6월, 1차 북미 고위급 회담을 시작으로 북한과 접촉했습니다.
난항을 겪던 협상은 그해 10월, 개리 애커먼 미국 하원 외무위 동아태 소위원장의 방북으로 전환점을 맞습니다.
북한 김계관 외교부 순회대사가 수기로 작성해 전달한 메모에 '일괄타결안'을 건냅니다.
NPT 영구 잔류, 미국이 핵무기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법적으로 보장한 평화협정 체결 등을 제의하고, 3차 북미접촉에서 최종합의하자고 한 겁니다.
애커먼 소위원장은 방북 후,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면담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김일성의 "북한이 핵무기 제조 의사와 능력이 없다"고 한 말을 전해듣고, "전적으로 거짓말"이라며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1994년 10월,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통해 핵프로그램 동결에 합의했지만, 2002년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심이 증폭됐고, 결국, 2003년 1월, NPT를 탈퇴합니다.
이 밖에도 1993년 외교문서에는 한-소 수교 이후 KAL기 격추 사건 재조사 시도, 대전세계박람회 개최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영상편집: 조현지 / 영상그래픽: 민혜정)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홈페이지 예약 후 외교사료관 열람실에서 볼 수 있고, 온라인으로는 오는 6월부터 열람 가능합니다.

KTV 김민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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