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진행됐던 남북고위급 회담 문서가 공개됐습니다.
당시 북측은 남북 국호 사용에도 분열을 고착화한다며 반발했고, '조선은 하나'라고 강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박지선 기자입니다.
박지선 기자>
통일부가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8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 회담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문서는 총 3천여 장에 달하며 당시 남북고위급 회담은 총리가 수석대표로 참여해 그간 이뤄진 남북회담 역사상 최고위급 회담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문서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회담 내내 '조선은 하나'라고 강조했고, 상호 체제를 인정하자는 남측 제안에 분열 지향적이라며 맹비난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1년 10월 24일 평양에서 열린 제4차 고위급회담 회의에서 북측 대표단장인 연형묵 정무원 총리는 '두 개의 조선으로 분열을 고착화한다'며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합의문에 양측의 정식 국호를 쓰는 것에도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결국 북한이 한발 물러서면서 쌍방 국호가 처음으로 남북 합의서에 담긴 바 있습니다.
1991년 11월 15일, 남북 대표접촉에선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서로 이견을 보였습니다.
북측 대표단의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는 대표부를 설치하면 국가와 국가들 사이의 관계로서 이해된다며 그래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나의 조선' 기조에 맞지 않는다고 본 겁니다.
북측 반발로 판문점에만 남북연락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또, 1차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은 유엔 동시 가입에 대해 "두 개의 국가로 될 수밖에 없다"며 비난했고, 단일 의석 가입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영상편집: 최은석 / 영상그래픽: 민혜정)
이번에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 열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남북관계 관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KTV 박지선입니다.
( KTV 국민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ch164, www.ktv.go.kr )
< ⓒ 한국정책방송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